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일이 뭐였냐 물으신다면
체력적으로는 베스킨라빈스 알바 (1달 만에 빤스런)
체력적+정신적으로는 첫 입사했던 병원 수술실 (3.5달 만에 빤스런) 이라고 말했다.
ㄴ한 의사랑 사수들이 신규를 진짜 징하게 태웠었음
근데 그 의사는 내가 화장하고 온 날엔 실수를 크게 저질러도 친절했는데
뺑글이 안경끼고 생얼인 날에는 실수도 안해도 이유없이 걍 엄청 태움 ㅅㅂ
알고보니 다른 입사 동기 언니랑 뺑글이 안경 끼고 온 나를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했던 얼빠 또라이 의사.
근데 이 두 개를 뛰어넘는 직종이 나타났다.
영국 병동 간호사.
한국에서도 수술방과 정신과 병동에서만 근무했다보니 병동 일에 대해 잘 몰랐고
영국에서는 수술방에서만 근무해서 잘 몰랐다.
병동 간호사는 곧 지옥이라는 것을..
2주 인덕션 프로그램을 받고 3주차에 병동으로 출근하면서 첫 날 부터 고비가 왔고
결론적으로 3일차 되는 날 개빡쳐서 HR에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고
목요일인 오늘 그냥 무단결근해버렸다.
사실은 출근 전부터 라인 매니저가 이상했다.
물론 내가 인터뷰 본 부서는 다른 곳이었고
거기 시스터가 여기 부서도 괜찮다면서 병동으로 보냈다.
그냥저냥 수술방 티오 나기 전에 다녀보자하는 마음으로
다른 곳을 더 알아보지 않고 진행을 했고
입사날이 다가올 수록 병원 전체 인덕션 외에 아무 정보를 주지 않아서 나 입사하는게 맞나 싶었다.
전체 인덕션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다음날에 병동으로 갔다.
라인 매니저가 네가 오늘 왜 왔냐는 반응 (?)
심지어 다른 간호사 조무사 스태프들은 내가 새로온 의사인줄 알았단다
유니폼도 없이 스테이션에 떡하니 앉아있어서
라인 매니저는 다른 병동 라인 매니저랑 잡담을 15분 정도 떠들었다.
나를 스테이션에 앉혀둔 채로.
15분 뒤,
온라인 Mandatory training 을 듣고 다음주에 오란다.
ㅇㅋ.
전 병원에서 애지간한 필수 교육은 다 들었지만
일단 매니저가 집으로 가라니까 가야지 뭐.
유니폼은 영국인 조무사 스태프를 부르더니
린넨 관리 부서로 데리고가서 같이 맞추고 오라해서 맞추고
임시 유니폼을 받고
스마트 카드를 받기 위해 IT 부서로 향했다.
어제 함께 인덕션 프로그램을 들었던 다른 부서의 간호사, 조무사, 약사 등등이 있어서 대화를 나누던 와중
나만 사복이었고 다들 유니폼을 미리 배포 받았더라.
이게 뭐지? 싶었다 ㅅㅂ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음 주 월요일
오래서 갔더니
이번주에는 또 왜 왔냐는 반응
라인 매니저가 오늘 너 교육센터에서 교육있다고 이메일 못받았냐고
그녀와 함께 이메일을 확인해보니 내 개인 메일 주소가 없었다.
간호사 신규 교육에 초대도 못받은 나... 뭐지?
라인 매니저는 거기가서 교육듣고 다음주 월요일 7시에 오라고 했다.
ㅇㅋ.
4일 동안 열심히 신규 교육을 이수했다.
또 다시 흘러 다음 주 7시, 첫째날
함께 같은 병동에 입사한 두바이 출신 남자간호사를 입구에서 만났다.
스테이션에 가보니 라인 매니저는 휴가인지 없고
차지 시스터가 대충 가르쳐줄 간호사를 짝지어주었다.
한참 열심히 쫓아다니며 배우다가
중간에 입사 동기가 나한테 묻는다
'오늘 우리 몇 시에 끝나는지 알아?'
'나도 몰라 (쉬발) 너도 몰라?'
그렇다.
심지어 내 시프트도 뭔지도 모르고 첫 날 출근했다.
두바이 출신 남자 간호사도 몰랐던 것이다.
라인 매니저는 도대체가 준비한게 1도 없었다.
3시즈음 되니 차지 시스터가 묻는다.
'너네 오늘 근무가 어떻게 돼?'
나는 속으로 '^^1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첫 날인데'
두바이 출신 간호사는 그래도 뭔가를 아는지 여기 병원 근무표 웹사이트를 꺼내 확인해본다.
보니까 라인 매니저가 어찌저찌 내 근무와 동기 근무를 짜놓고 가긴 했더라.
나는 그 근무표 어카운트가 언락되지 않아서 메일을 보내 잠긴 것을 풀었다.
근데 말이지.
근무를 시작할 때까지도 그 누구도 나에게 이 병원 근무표 웹사이트 좌표를 찍어준 사람이 없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병원마다 시스템이 약간씩 다른데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건지
라인 매니저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일인가?
(메일을 뒤져보니 전전 병원에서 이 사이트를 사용하긴 했는데
실제 우리 부서에서는 쓰지는 않았었다.
전 병원에서는 이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았었고...)
아무튼
근무표를 보더니 우리는 월-금까지 supernumeracy 라고 적혀있었고
곰곰히 생각하더니 차지 시스터가 그냥 지금 집에 가라고 한다.
첫 날에 롱데이일리가 없다면서.
시발 가르쳐주는 간호사 포함 신규인 우리는
오늘 우리 근무가 롱데이일거라 지레 짐작하여
8시간 근무하면서 휴식시간 단 15분만 취했다.
병동은 휴식시간이 왜케 짧은지
일의 강도에 비해 휴식시간이 너무 짧다.
사실 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잠시 우울감에 자살 사고도 많이 했었다.
간호사 일도 적성에 맞지 않기도하고
해외에 오면 뭔가 다를까 싶기도 했지만 사람사는데가 아무래도 다 똑같다보니
만족감이랄께 딱히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보낼 때마다 느끼는 수만가지의 감정이 휘몰아치는데
이걸 1년 사이에 2번이나 겪다보니 미칠 것 같았다.
둘째날,
안그래도 우울한데 새벽에 돌아가신 환자분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렸다.
사실 병동일을 정말 싫어했고 졸업하기 전까지도 나는 단 한 곳도 병원에 이력서를 넣지 않았었다.
혹여나 병동이나 중환사길로 배치받을까봐.
병동일을 시작하니까 학생 간호사 시절에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이력서를 넣지 않았던 이유.
그냥 나랑은 맞지 않은 곳이다.
환자들을 도와드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그거는 정말 그 순간 찰나의 뿌듯함일뿐
뒤 돌아서면 그냥 집에 가고 싶고 쉬고 싶고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보내야한다는 참담함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도 첫째날보다는 덜 바빴고 1-2개월은 버틸만 하겠다 싶었다.
그래도 직원들이 앉을 의자가 부족한건 너무한 것 같아.
셋째날,
여전히 별 다른 관심없이 얼레벌레 일을 배우고 있다.
오후에 다른 베이를 맡고있는 간호사가
다른 일을 하려고 복도를 지나가는 나와 나를 가르쳐주던 간호사를 붙잡고
우리는 둘이니 둘 중에 한 명이 사이드 룸에 들어가봐달라고 부탁했다.
나를 가르쳐주던 간호사는 왜 담당 조무사를 안부르고 우릴 부르나 의아해하더니
차지 간호사한테 가서 막 뭐라고 한다
그 와중에 콜벨이 울려서 차지가 가보라고 해서 갔다.
중년 여성 환자의 거동을 도와주는 상황이었다.
도와드리려고 코모드를 끌고 해당 환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려하자
아까 도움을 요청한 간호사가 그 방 아니라면서 막 뭐라고 한다.
나는 지금 이 환자를 도와드리고 있는거라도 상황설명을 하려고하니까
듣지도 않고 급발진을 한다.
나 혼자 지금 약 준비해야하는데 너네는 둘이면서 안도와주면 내가 어떻게 일을 하겠냐.
아니, 본인 담당 조무사는 어디다 두고
왜 우리한테 지랄이실까?
어이가 없어서 나도 내 할 말만 계속했고
방 안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중년 여성 환자분은 괜찮다며 미안하다며
결국 자기가 혼자서 가보겠다고 하신다.
무슨 이따위 병원이 다 있는건지?
그 간호사는 내 코모드를 뺏어 담당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그 간호사의 담당 베이를 확인해보니 그녀와 짝꿍인 조무사는 바이탈을 재고 있었다.
황당해서 나도 내 담당 베이로 갔고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몇 분 뒤에 그 간호사가 우리 베이로 와서 막 뭐라고 한다.
보는 눈이 많으니 복도로 불러냈지만
목소리가 커서 결국 환자들도 다 들었을듯.
시시콜콜하지 않은걸로 말다툼이 시작되었고
그 언쟁에 나까지 휘말렸다.
나를 가르쳐주던 간호사는 얘는 오늘 3일차야.
하는데도 듣지않고 지 말만하는 간호사.
심지어 담당 조무사까지 휘말려들게 되면서
나를 가르쳐주던 간호사가 난처하게 되버린 상황이다.
우선순위를 뭐부터 둘지 서로 대화를 했어야하는 상황인데
다들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다보니
지 할 말만 하는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도와드리려던 아픈 환자분이 직원에게 말도 안되는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거고
어이가 없었다.
업무 강도 때문에 압박을 받아서 그런가?
그렇게 쉽게 동료한테 화를 내나 싶기도하면서
이런 환영받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고
퇴근하면서 남편한테 이 일을 하면 내가 결국 죽을 것 같다 라고 말하니
(사실은 작년 말부터 자살에 대해 종종 얘기하곤 했다.
그래서 남편은 내 최애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가장 많이 걱정을 먼저 해주었다.)
그럼 나가지 말자고해서 HR에 편지를 쓰고 무단 결근을 했다.
NHS 에 입사하면 퇴사 시키는게 힘들다고 하는데
(실제로 영국 병원에 근무하는 남자 상사가 신규 직원을 성희롱했는데
퇴사 처리도 아니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 보낸 사례가 있다.)
일단 수술방 트렌스퍼가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그게 안되면 그냥 사직서를 내고 이 병원에서 다시는 일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게
한국 병원의 시스템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해외 병원 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낫겠지 하면서
영국으로 오게 된거고.. (호주나 미국을 더 가고 싶었지만.. 남편이 영국인이니까)
병원에서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고 내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껴진다면
그냥 이 일을 아예 관두는게 맞겠지.
이 블로그에 영국 간호사 문의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는데
정말 뜯어말리고 싶다.
업무 강도는 한국이랑 비교해 별다를게 없고
돈은 호주 미국보다 적게 주는데 왜 영국이어야만 하는지
물론 나는 미국이나 호주를 갔어도 만족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치만 미국으로 간 한국 간호사들은 집도 두 채씩 사고 그런다던데...
나는 현지인 영국인 남편을 두고서도 늘 빠듯한 예산에 허덕인다.
시부모님도 직업 번듯하시고 못사는 편도 아닌데 말이다.
심적으로 체력적으로 힘들고 우울해하고 있는데
마침 영국에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조는 HR에 연락해서 부서를 옮겨보는건 어떻겠냐고 했고
(근데 이건 내가 지금 무단결근을 시작한 시점으로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다.)
내 들러리 서줬던 로라는 자기가 어렸을 때 영국에 와서 했던 에이전시 일은 어떻겠냐고
나름 리프레시도 되고 괜찮다고 해서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에이전시 리스트도 뽑아다줬다.
로라도 NHS 병원에서 Medical Science 관련 직종을 하고 있어서
영국 nhs가 얼마나 별로인지 잘 알고 있고
현재는 병원 직종에서 벗어나려고 web developer 준비를 하고 있다.
그치만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사실 자신이 없다.
하고 싶은 꿈도 이제는 없고
살아보고 싶던 해외로 이민까지 오게 됐는데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그냥 나는 이렇게 타고난걸까?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만 갖는..
그냥 스스로 죽지못해 발버둥 치는 것만 겨우 하고 있다.
먼저 떠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나를 걱정하는 엄마를 위해 살아내야하는데
참 그게 힘드네 힘이 들어.
병원이랑 이 일을 마무리를 짓고 쉬게되면
이사를 와서 GP를 새로 등록해야해서
겸사겸사 우울증 검사를 받아봐야할 것 같다.
나도 나름 정신과 간호사였는데
내 병을 내가 다스릴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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